어떤 왕이 포도주의 맛을 본 백성들에게 이런 글을 보여주었다. “아버지의 뜻은 제사도 아니요 전도도 아니요 선교도 아니요 봉사도 아니요 헌금도 아니요 할례 받은 자와 영이 거듭난 자가 이제는 생각과 마음도 거룩해지므로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을 완성하는 것이니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자의 가족과 그의 주변에 거하는 사람들에게도 그 은혜와 진리의 빛을 비추어주시겠노라.” 그러나 사람들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글이기에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이에 왕은 그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어떤 믿는 영혼이 자기와 생각과 인격이 다른 한 형제를 시기하고 미워하다 자기의 의로 비판한 후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으니 점점 더 강퍅해지다 나중에는 선악의 죄를 따라 저주의 말까지 내뱉었다. 그러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아버지의 앞에 나가 형제를 저주한 그 입을 크게 벌려 아름답게 찬송을 부르며 기도했다. 그리고 예배가 마친 후에는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그 혀로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심지어 사람들의 앞에 서서 아버지는 예배를 기뻐 받으시니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예배는 타협해서는 안되고 다른 영혼들을 불쌍히 여겨 전도와 선교와 봉사와 헌금을 열심히 하자고 입을 열어서 가르쳤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그 더러운 자의 어떠한 말도 어떠한 행위도 받으시지 않으셨다.” 이야기를 들은 후 백성들 가운데 12명은 왕이 보여준 그 글의 뜻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켜 그때까지 자신이 말하며 행하던 모든 것을 다 멈추고 왕을 따르며 오직 거룩만을 이루어갔다. 그러나 다른 백성들은 자기의 의와 육의 욕심과 헛된 영광에 빼앗긴 마음을 돌이키지 못했으니 검은 것은 글이요 하얀 것은 종이였고 왕의 글과 말은 그들의 마음에서 끝까지 거부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버지의 뜻이라며 죽을 때까지 그것을 말하고 행했다.

 

이처럼 성전에 거하던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은 짐승의 피가 죄를 속한다는 것 외에 성막에 대한 그 무엇도 깨닫지 못했으니 자신이 살아있는 짐승의 심장에서 나온 피를 받아 손에 들고 있으나 왜 들고 있는지 성소에 들어갔을 때 오른쪽의 떡과 포도주를 왼쪽의 일곱 금 촛대를 보았으나 그것들이 왜 그곳에 있는지 지성소로 들어가는 휘장 앞에서 향기를 맡으면서도 왜 분향단이 그곳에 있는지 지성소로 들어갔을 때 법궤 안에 왜 그것들이 들어있는지 법궤 위에 피를 뿌렸으나 왜 뿌리는지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채로 때가 되면 그저 속죄제사를 위해 피만 뿌렸으니 죽은 짐승만 불쌍했다. 이렇게 거룩을 깨닫지 못한 채로 가르치며 행하는 것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마찬가지였으니 그들은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율법과 계명을 펴서 백성들에게 이르되 ‘무엇 무엇은 하지 말고 무엇 무엇은 하라. 이것은 하고 저것은 하지 말라. 이것이 의로운 것이니 아버지께 합당한 의를 행하는 것이 옳도다.’라고 하며 오직 예로부터 내려오는 도덕적인 것만 가르치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백성들을 거룩으로 이끌어야 했던 유대종교의 지도자들과 그들에게 가르침을 받던 백성들은 자신이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결코 죽지 못했기에 그 율법과 행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제사장들과 대제사장은 자기들이 원하던 것을 이루기 위해 모세 이후로 자기의 생각과 의를 따라 신령한 율법 안에 더 많은 것을 더하거나 빼거나 바꾸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지키던 것은 그리스도께서 모세에게 내려주신 아버지의 신령한 율법과 계명이 아니요 오직 인간의 의로 가득한 계명의 율법과 유전이었으니 아버지와 원수 되게 하는 그것은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백성들이 거룩에 마음 없는 행위를 하며 자신이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드리고 있다는 뿌듯함에 빠져들었고 지키면 지킬수록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의 욕심과 영광이 이루어졌다.

 

결국 말씀을 전하며 가르치는 자가 이렇게 거룩을 모르거나 원치 아니하므로 자신이 먼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으면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아 언약을 가진 백성들에게 그가 과연 무엇을 전하게 되리요?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택하신 그 둘째사람의 후손들을 과연 어디로 이끌리요? 그러므로 당시 성전의 목자들은 백성들이 거룩을 이루어가도록 이끌지는 아니하고 오직 이렇게 하면 하나님의 복을 얻는다 저렇게 하면 얻지 못한다고 가르치며 영을 가지고 육의 이익을 끼치므로 옆구리와 어깨로 병든 백성들을 밀고 뿔로 받아 세상으로 흩어지게 했으니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나오는 그 가르침에 따라 아버지께 나갈 때마다 늘 무엇인가를 손에 들고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애통하는 영혼들을 이렇게 세상으로 내모는 것은 이 마지막 때의 이방인목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며 가르치는 자들이 오직 육의 필요와 욕심과 또한 자신을 높이는데 마음을 빼앗겼으니 정작 거룩과 영원한 셋째하늘에는 마음과 믿음이 없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어찌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성전지도자들과 동일한 마음을 품고 있는 자들에게 진리의 깨달음을 주시리요? 그러므로 깨닫지 못하고 가르치는 자들은 십자가로 거듭나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고 흠 없게 될 수 있는 자들이 그들의 안에 있는 죄와 싸워 이기므로 거룩에 이르러 결국 몸의 구속을 얻도록 이끌지 아니하고 단지 이렇게 하면 축복을 받고 저렇게 하면 받지 못한다고 하면서 자신과 다른 영혼들을 썩어질 것과 헛된 곳으로 이끌고 있다. 그리하여 전통과 행위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방인들도 늘 무엇인가를 손에 들고 아버지께로 나가고 있다.

 

그러나 의문에 속한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고 거룩하게 될 수 있는 육체가 없으니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언약을 받은 자들이 아버지와 화평을 이루어 아버지께로 나아감을 얻게 하시고자 그들이 죄와 세상과 싸우며 거룩을 이루어가도록 오직 진리만을 전하셨다. 그러므로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은 예전부터 내려오던 성전의 그 가르침과는 전혀 같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이 그리스도께로 진리의 말씀을 들었을 때 놀랐다는 것은 그것이 그들에게는 새로운 가르침이었기 때문이요 또한 그들이 이전에는 그 누구에게도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리를 들었을 때 모든 자들이 그 말씀을 듣고 놀라며 기뻐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들과 육과 세상의 유혹가운데서도 십자가의 첫사랑을 지키고 있는 자들만이 그 안에 숨겨진 참된 진리를 늘 깨닫는다. 그러므로 당시에 놀랐던 것은 종교권력을 가지고 있던 목자들이 그랬다는 것이 아니요 군중들의 반응도 아니요 오직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헛된 세상에서 나와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그리스도를 따르던 11제자들과 70제자들의 영혼이 그리스도의 가르치심 안에 담긴 그 참된 진리를 보고 깨달았으매 놀랍다고 표현한 것이었다. 하지만 살고자하는 영혼들첫사랑을 붙들고 있는 영혼들 외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에게 생명을 주는 진리를 들어도 그곳을 떠나가되 독사의 새끼들과 그들을 따르는 자들은 오히려 진리를 전하는 자들에게 달려들어 상하다 마지막에는 잡아서 피를 흘리게 되어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