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년 전 감옥에서 마지막 선지자로서 몸을 산 제사로 드린 세례요한의 질문에는 마지막 때에 있을 일의 비밀이 담겨있다. 그것은 요한과 주님의 제자들은 나사렛예수라는 인자를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다 끝에는 자신의 목숨을 드리므로 거룩하고 영광스런 부활을 얻었으되 그렇지 못했던 성전의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요한과 제자들을 잡아 사망에 넘기거나 직접 죽이고 오히려 자신이 사망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이런 일이 소수의 신령한 신부들이 들림 받은 후 마지막 대환난의 끝에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내려오시기 바로 전에도 동일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 비밀이니 누구든지 살고자하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따라 죽으면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얻었던 그 생명에 이를 수 있다.

 

참된 선지자였던 요한과 거짓선지자였던 성전의 종교지도자들은 그 수효와 권세에 있어 마치 계란과 바위였다. 게다가 요한은 전통을 따르는 목자들뿐만 아니라 당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의 불의와 죄악도 지적하며 돌이켜 생명을 얻으라고 선포했다. 그러나 세상의 임금들은 사람에게 없는 죄목도 씌워 합법적으로 혹은 쥐도 새도 모르게 불법적으로 죽일 수 있는 권세가 있으되 손할례당이 눈엣가시 같은 광야의 소리를 세상에 넘겼기에 헤롯은 회개하라며 말씀으로 찌르는 그를 쉽게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 적그리스도는 법을 다루는 자들을 통해 6일 동안 진행된 재판에서 모반을 계획했다는 누명을 씌워 감옥에 넣었다. 그리하여 요한이 그리스도께로 이 질문을 한 것은 그가 옥에 갇힌 후 90일이 되었을 때였다.

 

요한은 자신이 받은 계시를 믿었기에 광야에서 메시아의 길을 예비했으나 유대인들은 전통에 거하며 어릴 때부터 성전의 목자들에게 대대로 들어온 말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우선 처음에 오는 자는 거짓된 자요 나중에 오는 자가 진짜라는 말이 있었으나 구약율법과 예언서에는 그런 말씀이 없고 예루살렘성을 중건하라는 영부터 69이레가 지난 후 메시아가 와서 피를 통해 속죄와 구원을 이루겠다고 약속했으니 그 말은 의문의 율법과 유전이었다. 둘째 유대인들은 나중에 오는 메시아가 자신들과 함께 이스라엘의 모든 것들을 되찾아 해방을 준다는 말을 들었기에 참된 메시아라면 그가 반드시 자신들을 해방시킬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인자께서는 구약의 예언에 따라 세상의 왕들처럼 화려하게 오지 않으셨고 외모조차 보통사람보다 훨씬 더 안 좋으셨으니 요한이 예비한 인자는 율법과 선지자의 예언이 아닌 독사새끼들의 가르침에 의하면 거짓메시아였다. 그리하여 도마를 비롯한 제자들도 또한 70인도 또한 그리스도를 사랑한 백성들도 처음에는 그 의심을 다 가지고 있었으니 그들도 유대인으로서 그 말들을 늘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의심은 자신의 젊음과 인생을 바쳐 주님의 일을 했던 요한도 마찬가지였으니 그는 3개월간 옥에 있으며 자신이 죽기 전에 그것을 꼭 확인하고 싶었다. 자신이 만일 참된 메시아를 위해 목숨을 잃으면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하므로 그것은 영생을 위한 값진 죽음이 되지만 거짓된 메시아를 위해 죽는 것이라면 자신과 가족과 공동체에 생명 없는 무가치한 죽음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곧 자신의 목숨을 잃어야 하는 시점에 있던 요한은 나사렛예수라는 인자가 구약의 예언대로 오리라 한 참된 메시아인지 아닌지를 분별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자신을 면회 온 자기의 제자들을 통하여 그리스도께 이런 질문을 전달하게 된다.

 

“당신이 이스라엘을 구원코자 하는 참된 그리스도가 맞습니까? 또한 제가 예비했던 그리스도가 바로 그것을 이루는 그 길에 서계시는 것이 맞습니까?”

 

그런데 이 질문을 가만히 보면 질문 하는 자도 질문 받는 자도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그 십자가를 보는 시각에 따라 자신의 마음과 믿음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 즉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자에게는 당신이 우리를 죄와 세상에서 구원해 거룩케 하여 아버지와 하나되게 하시는 참된 그리스도가 맞으며 또한 제가 예비한 메시아가 바로 그 속죄를 이루고자 어린 양의 길에 서계시는 것이 맞느냐고 들린다. 반면 마음과 믿음을 육과 세상에 두고 자기의 뜻과 계획을 이루고자 하는 자는 우리가 사는 동안 육의 부요와 세상의 복을 주는 그리스도가 바로 당신이며 또한 제가 예비한 메시아가 바로 그런 복을 위해 그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는 것이 맞냐고 들린다. 하지만 요한은 참된 선지자였으니 전자의 문제를 고민하며 질문했다. 또한 나사렛예수라는 인자가 만일 참된 메시아라면 거룩을 이루고자 고민하고 있는 영혼에게 어떤 답을 주시는 것이 옳겠는가?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거짓된 목자들의 교훈과 더불어 율법과 예언도 가지고 있는 유대인의 모든 상황을 아시고 그가 오직 말씀을 펴서 비교하며 판단할 수 있도록 이런 답변을 주신다.

 

“그리스도가 만일 어느 죄인은 구하고 어느 죄인은 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메시아의 피에 용서의 한계가 있는 것이니라. 또한 십자가에서 완전한 자유를 얻고자 하는 자들의 수도 적을 것이니라. 그러나 인자의 피는 거룩한 피요 십자가의 피는 원수의 머리를 누른 상징이니 그가 어떠한 죄로 소경과 귀머거리가 되었든 문둥병에 걸렸든 혼과 마음의 병에 걸렸든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돌이킬 때에는 누구든지 용서가 가능하겠노라. 또한 어떠한 사람이라도 십자가를 붙드는 자는 자유를 얻을 것이요 아버지의 사랑은 끝이 없으며 아버지의 능력에는 아무도 미칠 수 없으니 너도 또한 이와 같이 나의 피와 십자가의 승리를 아직은 보지 못하였으되 이미 보았다 함과 같이 믿고 또한 간직하며 그날을 바라보며 있으라.”

 

이제 요한은 자기제자들을 통해 전해들은 그 말씀을 오직 율법과 예언에 맞추어 보았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자신이 전통에서 늘 들어오던 사람들의 말이 아닌 오직 말씀을 붙드는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그러므로 그는 완전한 사람처럼 살과 피가 있는 인자가 참된 그리스도가 맞고 또한 자신이 예비한 나사렛예수가 생축제물로서 속죄와 부활을 이루는 그 길에 서있음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는 감사와 믿음으로 목베임을 통해 아버지께로 입술의 제사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은 마지막 환난 때에 똑같이 이루어질 비밀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2천년 전에 십자가를 지신 인자를 메시아로 믿는 유대인과 이방인은 신약에 따라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지만 안 믿는 유대인은 그들의 전통과 유전에 따라 나중에 오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즉 그리스도를 알고 있는 자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동일하게 메시아를 기다리되 자신이 기다리는 자가 진짜라고 믿는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이 육과 세상에 있는 자는 그가 어떤 위치에 있더라도 3차 대전 후 나오는 가짜그리스도를 영접하며 자신의 몸에 666을 받으리니 전통을 따르는 목자들과 그들의 말을 듣고 따르는 염소들은 전부 사망으로 내려간다.

 

그렇다면 그들은 성경을 본적이 없거나 말씀을 몰라 거기서 나오지 못하고 세상과 함께 사망으로 들어가는가? 그렇지 아니하니 보고도 듣고도 알고도 그들이 종교와 전통에서 돌이키지 못함은 그때까지 받은 은혜와 또한 앞날에 구하는 은혜가 그들을 나가지 못하게 붙든다. 즉 사람은 자신의 눈과 귀로 거짓을 확인하고도 은혜를 받았으면 자기가 늘 들어온 말에 따라 그것이 참되게 보이니 계속 따르되 반대로 은혜를 받지 못했으면 자기가 늘 들어온 말에 따라 진리를 거짓이라고 생각하며 버린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자신을 반대하는 수많은 백성들을 총과 칼로 죽이고 왕이 된 후에 정의사회를 구현하겠다고 말하지만 자리를 이용해 불법으로 돈을 모으고 어떤 사람이 입만 열면 세계와 가정의 평화를 말하지만 뒤로는 무기를 팔아 돈을 벌고 그의 자식들은 돈과 권력을 위해 서로 싸우고 있다. 이때 사람은 자신의 두 눈과 귀로 잘못된 것을 분명히 확인했으니 거짓된 자들에게서 충분히 돌이킬 수 있으나 받은 은혜와 앞으로 구하는 은혜가 사람을 못 돌이키게 하니 그가 만일 거짓된 자에게서 돈과 좋은 자리를 받거나 문제를 해결 받으면 거짓평화와 거짓정의임을 알면서도 거짓된 자를 계속 따르게 된다.

 

이처럼 이성적인 사람도 어리석게 될 수 있으니 그것은 오직 말과 행위가 다른 그 인격체에게 자신이 원하는 은혜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거짓목자들이 자신의 젊음과 인생을 바쳐 그때까지 목회사역을 한 것은 거룩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려는 것이 아니요 육의 부요와 세상의 영광을 얻고자 함이었고 그들을 따르는 양들의 마음도 똑같다. 그리고 그들의 아비인 원수는 그들이 원하는 은혜가 무엇인지 알기에 자신이 가진 세상을 통해 썩어질 헛된 것들을 베풀어주며 이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이 받아오며 구하던 은혜로 인해 짐승의 수를 거부하지 못하고 오히려 육과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그 표를 진심으로 받고 원수를 자신의 왕으로 영접한다. 그리하여 마지막 때는 거짓된 주님이 그들에게 거치는 돌과 걸리는 반석과 함정과 올무와 덫과 채찍과 가시가 된다.

 

그러나 세상의 왕이 되는 은혜와 재벌이 되는 은혜와 종교의 영광을 가진 독사의 자식이 되는 은혜를 받았다 할지라도 그런 은혜와 영광을 좇았을지라도 아무리 낮은 위치라 할지라도 아버지께서는 모든 사람이 생명에 이르길 원하시니 생명에 이를 수 있는 은혜를 공평하게 내어놓으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전통에서 들어온 말과 자기의 생각을 내려놓고 오직 성경을 펴서 말씀과 맞추어보는 자에게는 아버지께서 깨달음을 주시리니 그는 거기서 나와 진리를 따르며 거룩에 애쓸 수 있게 된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환난 전에 들림을 받거나 환난으로 들어가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옥에 갇히되 십자가의 승리를 믿고 담대히 목베임을 당한다. 하지만 주님을 위해 생명을 잃은 후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스런 생명에 이르리니 그것은 그가 오직 그리스도와 십자가만을 똑바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마지막 때에는 많은 자들이 가짜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하여 넘어지되 참된 그리스도로 인해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들도 반드시 있으니 그것은 그들의 살고자하는 마음과 갈급한 마음에 거짓이 없고 신실했기 때문이다.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