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에 기록된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144000의 피 흘림과 함께 이 땅에 내려오신다.
그러나 원수는 그리스도의 전에 무저갱에서 올라와 666으로 온 세상을 하나로 만든 후
자신이 왕으로 다스린다. 그러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전통을 따라 오히려 그 가짜를 구세주로
믿고 환영하며 666을 받는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는 많은 자들이 주의 이름을 부르되 정작 그리스도로 인하여 실족한다. 반면 어떤 자들은 들림을
받고 어떤 자들은 그가 가짜임을 알고 환난복음을 전한 후 아버지의 그 뜻과 계획을 위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친다.
누구든지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 말씀을 깨달으면 그 실족과 생명의 기준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의 당시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그리스도의 오심을 알고 있었으며 또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리스도께서 오시자 성전의 목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양들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여 유전과 전통에 의하여 나사렛예수라는 그 인자를 거짓된 메시아라고
의심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유전과 전통이 말하며 이끌어주니 어찌 율법과 예언과 비교하리요?
말씀을 펴볼 생각도 없었다. 반면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그들을 따르던 백성들은 율법과
예언의 깨달음을 얻었으니 그 인자를 참된 메시아로 믿고 전통에서 돌이켜 예루살렘교회를 이루었다.
또한 율법과 예언이 예언한 그 진리를 끝까지 따라갔으니 그것은 자신의 살고자 하는 마음과 갈급함을 오직 진리가 이루어주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들이
이러한 상황에 있음을 아셨기에 그들이 어려서부터 들어온 유전과 전통이 아닌 오직 율법과 예언에 인자와 그의 말을 비추어보고 판단하므로 실족하지
않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도 그리스도께서도 거룩하신 영께서도 인격체시요 사람도 인격체이니
억지로 믿게 할 수 없다. 게다가 사람은 자신이 원치 않는 것과 함께하면 마음과 몸이 힘들어지되
원하는 것과는 함께 할수록 기쁘다. 그러므로 현재까지의 말씀을 듣고 더 이상 믿지 아니하는 자는
그곳에서 떠나가되 따르려 하는 자들에게는 더욱더 확신을 주시기 위해 인자가 메시아임을 확증할 수 있도록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주셨다.
첫째 모든 선지자가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라는 것은 우선 그리스도전의 모든 선지자들은 메시아가 올 것이라는 예언을 동일하게 전하며 또한 기록으로도 남겼다.
예를 들어 이사야는 메시아가 사람들의
죄와 허물을
위해 고난과 고통을 받을 수 있는 인자로 올 것을 기록했고 호세아는 음란한 여자가 자기의 남편을 떠나 다른 남자에게 가는 것처럼 믿는 자들이
아버지와 아들께 마음을 두지 않고 세상에 빠져있으나 은혜를 깨닫고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자들은 아버지께서 의롭고
거룩하게 회복시키실 것을 기록했고 말라기는 아버지께서 세상을 심판하시기 전에 믿는 자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마음을 돌이켜
아버지의 그 뜻에 애쓰므로
그 생명의 약속을 성취하도록 엘리야를
보내시겠노라고 기록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이렇게
그리스도를 예언한 선지자들 가운데 마지막이었으되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메시아라고 선포하며 그리스도를 예비했다.
그러므로 요한의 그 예비를 통하여 오신 그 인자가 바로 참된 메시아로 확증되는 것이다.
둘째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라는 의미는 이것이니 유대인들은 아버지께로 주어진 그 부활의 생명을 얻으려면 약속을 받은 자신도 율법과 계명의 약속을 지켜야 함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율법과 계명을 지키고자 애썼으되 사람의 힘으로는 그것을 다 지키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율법과 계명을 주신 메시아가 와서 그것을 완성시키면 자신도 그를 힘입어 그것을 완성시키므로 그 부활의 약속을
이루고자 메시아를 기다렸다. 그런데 인자가 십자가에서 율법과 계명을 완성하고 부활했다.
그러므로 그 인자가 바로 참된 메시아로 확증되는 것이다.
결국 유대인들은 율법과
예언을 가지고 있으니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라는 그 말씀을 통해 나사렛예수라는 그 인자가 참된 그리스도임을 믿을 수 있다.
또한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기는 하나 말씀에 의심을 가진 자는 그 인자가 예언대로 고난 받고 피 흘리므로 율법과 계명의 약속을
이루고 부활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믿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당시의 목자들과 양들은 마음이 다른
곳에 있었으니 말씀과 맞추어보지 않았으며 십자가를 보고도 믿지 못했다. 그러므로 오직
살고자 하는 마음과 가난한 마음을 가진
자들만이 진리를 보고 듣고 믿었으며 믿고자 하나 믿음이 연약한 자들은 십자가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고는 확실히 믿었다.
그렇다면 당시 전통의
목자들과 양들은 어떻게 십자가를 보고도 즉 율법과 선지자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을 보고도 인자를 부인했는가?
또한 교회시대의 많은 유대인들은 지금도 그 나사렛예수를 죽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가?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세상에 있음으로 인하여 마음의 눈이 어둠에 가려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첫째 유대인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과 보이는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께서 창조하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세상이 어찌
창조자인 그리스도를 대적할 수 있겠는가? 즉 로마라는 세상나라와 피조물인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에게
생명을 주신 창조자를 죽일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세상의
공중권세를 잡은 원수가 이 세상을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끝까지 깨닫지 못하는
유대인들은 그때도 지금도 원수에게서 나오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의 모든 영광과 권세와 물질을 다 취하고 있다.
둘째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이 갈대아에서 나온 이후로 또한 자기 민족이 이집트에서 나온 후 가나안으로 향할 때 그 광야에서 이방민족들에게 고난 당하고 핍박당한 모든
것을 다 해소해 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그리스도께서는
원수가 이끌고 있는 이 어두운 세상에다 천년왕국을 세우심이 아니요 오히려 세상을 심판하시고 이 땅을 낙원으로 선하게 회복하신 후 그 불법자가
없는 상태에서 공의와 사랑으로 그 나라를 다스리신다. 또한 유대인에게는 새 예루살렘을 이방인의
신령한 교회에게는 만국을 다스리게 하시니 그것은 천국에서도 또한 천년왕국의 끝에 올라갈 아버지의 그 영원하신 셋째 하늘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마음을 원수에게
빼앗기고 유대교의 전통을 따르는 유대인들은 지금도 이 두 가지를 해결해주는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즉 세상이 환영하며 또한 전쟁으로 세상을 하나로 묶어 유대인의 열두 지파가 세상을 다스리게 하는 그런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마치 이방인이 교회에서 늘 말하기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셨으니 우리는 오직 믿기만 하면 되리라 하며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의 복을
바라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은 거룩이니 그런 유대인과
이방인이 기다리는 것은 육과 세상을 마음껏 즐기게 해주는 자다.
그리스도께는 지금까지
사망의 그늘에 앉은 자들로 하여금 아버지께로 마음을 돌이키게 하는 엘리야가 바로 그 인자임을 깨우쳐주신 후 마지막으로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셨으니 그 의미는 현재까지의 말씀을 듣고 원치 않는 자는 그곳을 떠날 것이요 머무르는 자는 그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의 의미들을 깨닫도록 마음을
준비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진리는 변함이 없으니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그대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때에도 진리를 원하는 자는 늘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기다리되 세상을 원하는 자는 진리가 전해지는 곳을
떠나간다. 그리하여 세상에서 나와 진리와 함께하며 그의 빛을 깨닫고 따라간 자들이 그 생명에
이르되 믿는다며 어둠에 마음을 둔 자들이 마지막에 세상과 함께 사망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