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마을에 사는 백성들이 전부다 머리에는 40킬로그램의 모래 짐을 이고 등에는 60의 흙 짐을 지고 있었으나 벗을 수 없었으며 열거나 찢어서 따라낼 수도 없었고 다른 사람의 짐도 도와주지 못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늘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다니며 어디서든 무엇이든 짐에 따라 생각과 말과 행위를 했으나 이상하게도 힘들어하지 않았으니 벗고 싶어하기 보다는 무겁게 느껴질 때마다 오히려 기쁘고 즐겁고 편리했다. 그러나 어떤 두 명은 자신의 지난날을 가만히 돌아보고 오늘날의 자신을 바라보니 그 짐들이 늘 슬픔과 두려움과 고통만 안겨주었음을 깨달았으되 벗고 싶어도 스스로는 벗지를 못하니 그저 애통만하며 주저앉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왕들의 왕이 그 마을로 들어와 모든 백성에게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지 짐을 벗기 원한다면 그 짐을 진 채로 내게로 오라! 그러면 더 이상 짐에 의해서가 아니요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할 수 있는 방법과 또한 완전히 벗을 수 있는 길을 보여주겠노라.” 하지만 다수가 왕의 말을 믿지 못함은 자기의 짐을 옳게 여겼기 때문이되 늘 애통하던 두 명은 왕의 말을 듣자마자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그대로 가지고 왕에게 달려왔다. 이에 왕이 나무칼로 찌르자 검은 연기와 더러움이 조금 흘러나왔다. 그러므로 그들은 지난날의 후회와 슬픔과 두려움과 고통에서 벗어나 기뻐하며 왕께 감사를 드렸다. 그런데 첫 번째 사람은 연기와 더러움이 다 나오거나 짐이 벗겨지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으니 그 정도만 만족하며 9개월 후 다시 마을을 향해 손을 펼쳤다. 한편 두 번째 사람은 뚫린 구멍으로 연기와 더러움이 더 나오도록 자신의 힘을 다해 흔들어보았지만 더 이상 나오지 않았고 오히려 노력할수록 절망과 낙심이 깊어졌다. 그러므로 그는 짐을 벗기 원한다면 그 짐을 진 채로 내게로 오라던 왕의 말이 이해되지 않아 고민에 빠졌다. 그때 왕은 그들에게 공히 이렇게 말해주었다. “너희가 그 짐을 벗을 수 있도록 내가 이미 다 이루었으니 그 마을에서 나와 나와 함께 거하며 내 말을 들으면 생각과 행위와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겠고 또한 나를 따르는 자는 그의 짐에서 연기와 더러움이 서서히 빠져나오며 짐이 점점 가벼워질 것이요 그러다 마지막에는 그 짐이 스스로 벗겨질 것이로되 나와 함께하지 않거나 말을 듣지 않거나 따르지 않으면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될 것이니라.” 하지만 전자는 그 정도로만 만족했으니 다시 마을로 들어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되 짐으로 인해 후회와 슬픔과 두려움과 고통과 허무가 점점 더해갔다. 반면 후자는 독수리 같은 자유를 원했으니 언제나 어디서나 어디까지나 왕만 끝까지 따라갔다. 그러므로 그의 짐에서는 연기와 더러움이 서서히 흘러나와 점점 가볍게 되었으니 왕을 따르는 그 길에서 기쁨과 만족과 소망과 평안을 얻었다. 그리고 짐이 다 벗겨졌을 때는 왕이 되어 독수리처럼 하늘을 높이 날아다니며 자유를 얻었으니 내가 다 이루었다는 그 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반면 무거운 짐을 지고 마을을 방황하던 사람은 환난과 곤고를 당하면서도 항상 이렇게 거짓말하며 자위했다. “나는 왕이 다 이루었음을 믿는 자이니 나는 그 짐에서 해방되었노라.”

 

이처럼 무거운 짐이라는 것은 사람의 안에 있는 그 죄를 뜻하는 것이니 수고하는 자는 원수가 심은 그 선악에 따라 생각과 행위와 말을 하지 않으려고 자신의 마음을 다해 싸우는 자다. 즉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는 그리스도의 피로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자들 가운데서 오직 두렵고 떨림으로 십자가를 통해 거룩에 이르고자 애쓰려 하는 영혼을 의미한다. 하지만 사람은 거룩의 소원이 있을지라도 아무리 애쓸지라도 죄와 육과 세상으로 인해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는 거룩을 이룰 수 없으니 오직 온유하고 겸손하신 인자의 살과 물과 피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우선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말씀을 전하는 자신이 먼저 말씀에 순종하며 늘 아버지의 그 때를 기다리셨다. 또한 자신이 하고 싶은 말과 행위를 하므로 자신의 뜻을 이루거나 자신을 높이려 하지 않으셨다. 오직 진리만을 전하므로 아버지의 뜻과 계획만을 이루어가셨다. 그리하여 십자가의 그 길에서 그의 육은 비록 고난에 거했으나 온유하고 겸손하신 성품으로 인해 아버지께로 내려오는 사랑과 은혜를 입었기에 그의 마음에는 늘 기쁨과 만족과 평안을 누리셨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흠 없는 생축제물로서 아버지의 의와 뜻을 다 이루셨던 것이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아버지의 의와 거룩을 다 이루신 그리스도께서는 선악의 짐을 지고 있는 모든 둘째사람을 불쌍히 여기신다. 하지만 사람은 연약한 육을 입고 있으며 원수는 공중권세를 붙들고 있으니 세상에 그대로 거하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거룩을 이루려 하기보다는 이미 그것을 다 이룬 자신에게로 나와 오로지 자신을 의지해 이루어가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모든 사람가운데 오로지 수고하는 영혼들에게만 허락하신 것이니 그 의미는 이것이다.

 

“나는 이미 죄에서 해방되었으며 세상을 이기었노라. 또한 거룩을 완성했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에게로 오면 그는 그 죄와 더 이상 함께 하지 않겠노라. 또한 나와 함께하는 자는 거룩에 이를 수 있는 그 오직 한 길을 그가 찾을 수 있겠노라.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원하는 영혼은 불의하고 죄악된 이 세상에서 나와 나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누구와 함께하시며 누구에게 사막에서 광야로 들어가는 길을 보이시며 누구를 그 피난처에서 위로하시리요? 그러므로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으로 죄를 애통하며 이기고 싶어하는 자와 굶주린 자와 삶의 이유와 목적을 찾는 자만 영육의 진리와 함께하며 에덴의 그 회복과 푯대의 상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반면 자신이 의롭지 못함을 알면서도 목소리를 높이는 의인과 자기 죄는 숨기고 이웃의 죄를 들추는 거룩한 자와 오직 믿음과 은혜만 외치며 순종치 않는 담대한 자와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으니 이제는 상급을 위해 충성하자며 거룩에 마음 없는 행위와 율법에 빠져 다른 복음을 전하며 따르는 자들은 결단코 피와 함께하고자 아니하리니 거짓된 자들은 한 새 사람으로서 주님과 영원히 함께하게 될 부활의 생명보다는 그 짐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복음

양의 문

가시나무

실패의 용기

Come to me

당신께 가까이

푸른 그대와 안식

나 오직 주님 만을

세상 모든 수고 끝나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죄짐 맡은 우리 구주

푸른 애벌레의 꿈

모세의 기도

촛불예배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