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4:4(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살고자하는 마음이 있는 영혼은 아버지의 영광과 얼굴 뵙는 날을 기다린다. 또한 아버지께 마음이 있는 영혼은 아버지께서 계시는 본향인 셋째하늘을 소망한다. 한 가지 비유를 통해 그 기다림과 소망이 어떠한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또한 어떻게 기다리며 소망하는지도 깨달을 수 있다.

 

한 아들이 자기를 낳아서 길러준 부모의 은혜를 알았다. 그러므로 은혜에 감사한 그 아들은 부모의 말에 순종했다. 또한 부모를 기쁘고 즐겁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다 그 아들은 자기의 부모가 포도열매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 아들은 포도나무 한 그루를 가꾸기 시작했다. 그런데 포도나무를 가꾸는 동안 그 아들은 부모를 만나 기뻐하는 날만을 기다렸다. 또한 포도를 보고 좋아할 부모의 얼굴이 늘 떠올랐다. 그리고 그의 온 마음은 부모가 있는 고향에 가있었다. 이와 같이 부모의 은혜를 깨달은 그 아들의 마음은 부모와 고향만을 그리워했다. 그리고 부모와 고향을 그리며 포도나무를 가꾸는 일에만 자기의 마음을 두었다. 이제 5년이 지나자 온 마음과 정성을 드린 그 나무에 깨끗한 포도열매가 풍성히 열렸다. 그러므로 그 아들은 그 나무의 포도를 다 따서 상자에 담았다. 그리고 그 상자를 들고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으로 뛰어가며 마음은 두근거리며 기뻤다. 또한 부모님의 얼굴과 고향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한편 그 부모는 아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큰 잔치를 준비했다. 그리고 마을 입구까지 나가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그 아들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드디어 마음에 그리던 부모를 만났다. 그리고 그의 부모는 몸이 성한 아들을 보며 기뻐했다. 그러므로 서로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 아들은 부모의 집에 도착해서 자기가 가꾼 포도를 부모님께 드렸다. 이때 그 부모는 아들의 땀과 정성이 그 포도열매에 들어있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의 부모와 아들은 그것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한없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부모가 준비한 잔치를 기쁘고 즐겁게 즐겼다.

 

교회는 이처럼 아버지 얼굴과 영광만을 구한다. 또한 아버지의 나라인 셋째하늘만을 소망한다. 그리고 그 소망이 있으니 아버지의 뜻인 거룩에 애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이 땅에 거하며 거룩에 애쓰는 영혼들에게는 셋째하늘을 보이시기 원하신다. 또한 그 거룩한 곳도 보여주시기 원하신다. 그러므로 요한을 통해 교회시대의 모든 자들에게 성소와 지성소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이다. 또한 아버지의 나라를 사모하는 자들에게는 지금도 그 거룩한 곳을 보여주고 계신다.

 

거룩하신 영께서는 계속해서 아버지보좌 주위의 모습을 보여주고 계신다. 그러므로 이제 요한은 24장로와 그들의 보좌를 보게 된다. 4:4을 보자.

 

아버지께서는 찬란한 영광 중에 계신다. 그 아버지의 빛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스도의 빛을 통해 깨달을 수 있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자녀들 가운데 가장 밝은 빛을 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태양빛보다 천 배가 되는 빛을 비추고 계신다. 그런데 그 아들의 영광은 아버지의 영광가운데 한 부분이다.

 

아버지께서는 이처럼 영광스런 빛으로 인하여 자신을 가리신다. 그리고 그것을 위하여 지성소의 깊숙한 곳에 자신의 보좌를 마련하셨다. 그리고 그 보좌에 맏아들도 함께 앉혀주신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니요 세 개의 보좌에서 가장 밑에 앉으신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함께 앉을 때 가장 낮은 단계에 앉으시는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 달이 내는 빛보다 태양이 내는 빛이 더 밝다. 그러므로 달이 태양의 앞을 가려도 태양빛을 막지 못한다. 밝은 대낮에 달과 해가 동시에 떠있어도 세상이 밝은 것은 태양으로 인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앞에 계신다 해도 아버지의 빛을 가리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도 아버지의 영광을 가리지 않기 원하신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그 보좌에서 가장 낮은 곳에 앉으시는 것이다.

 

둘째 태초에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품에서 아들을 낳으셨다. 그리고 다른 자녀들의 영혼도 아버지의 품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품에서 나온 그리스도께서도 다른 형제자매와 동등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자녀들과 동등함을 취하고자 형제자매들과 함께 앉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그리스도 자신은 다른 형제자매보다 가장 으뜸이 되신다. 그러므로 그것을 인정하여 다른 형제자매보다 한 칸 더 높은 곳에 앉으시는 것이다.

 

셋째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을 낳으신 아버지께로 영광을 돌리신다. 또한 아버지께로 흘러나오는 그 영광을 받아 모든 형제자매에게 그 영광을 전하신다. 즉 아버지보다는 낮지만 다른 형제자매들보다는 위에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보다는 낮고 형제자매들보다는 높은 곳에 앉으시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이처럼 자신의 보좌 우편에 아들을 앉혀주신다. 그리고 다른 자녀들 가운데도 맏아들의 보좌를 마련해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자녀들과 함께 거하실 때는 그 정해진 보좌에 앉으신다.

 

아버지께서는 또한 그 성소에 자녀들의 보좌와 몸의 보좌도 준비해두셨다. 그러므로 자녀들과 그리스도의 몸이 모였을 때 성소에 정해진 그 자리에 앉게 된다.

 

아버지께서는 또한 그 성소 안에다 24장로의 보좌도 준비해두셨다. 그러므로 24장로들도 그 정해진 보좌에 앉게 된다. 성소 안에 있는 24장로의 보좌위치를 그림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림)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보좌에 함께 앉으시지만 자녀들 사이에도 보좌를 가지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형제자매들과 함께 거하실 때는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의 중간에 있다. 그리고 그 그리스도의 보좌를 중심으로 12장로의 보좌가 둘려있다. 그리고 후반의 12장로는 자녀들과 몸의 보좌를 두르고 있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장로들을 위하여 모두 24개의 보좌를 계획하셨다. 그리고 그 중에 12개의 보좌는 유대인에게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12지파가운데 한 지파에 한 명씩이 그 장로의 보좌에 앉게 된다.

 

아버지께서는 또한 그 장로의 보좌가운데 7개는 이방인을 위하여 예비하셨다. 그러므로 이방인은 일곱 교회시대에 한 명씩이 그 장로의 보좌에 앉게 된다.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의 몸을 위한 자들을 위해서도 그 보좌를 준비하셨다. 그러므로 그 장로의 보좌가운데 나머지 5개는 종들 가운데서 다섯에게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오직 다섯 가지에 충성한 종들도 그 장로의 보좌에 앉게 된다.

 

이처럼 아버지께서는 유대인의 열두 지파에서 한 명씩을 장로로 뽑으신다. 그리고 이방인가운데서도 각 교회시대에 한 명 이상이 나오지 않게 하셨다. 그와 같이 종들 가운데서도 다섯으로 그 수를 정해놓으셨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예비하신 24장로의 보좌도 자녀들과 몸의 보좌처럼 공평하고 정직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제 거룩하신 영께서는 장로들의 보좌에 앉는 자들에 대한 말씀을 주신다. 4:4을 보자.

 

24장로는 자녀들 가운데 가장 높은 거룩을 이룬 자들이다. 그러므로 장로들의 육체는 가장 거룩하며 그리하여 그들이 입은 옷도 가장 희다. 그리고 사람들은 영광을 원하니 많은 자들이 그 24장로의 보좌에 앉기를 원한다.

 

그러나 모든 자들이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자들이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직 아버지께서 정하신 자녀의 거룩을 이룬 자가 자녀의 보좌에 앉는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도 그 몸의 거룩을 이룬 자가 그 몸의 보좌에 앉게 된다.

 

마찬가지로 많은 자들이 장로의 보좌를 원하지만 아버지께서 예비하신 자들이 그 보좌에 앉게 된다. 그러므로 아버지께는 그 장로들의 조건에 5가지의 큰 원칙을 정해두셨다. 그리고 그 5가지의 거룩에 이른 자를 24장로로 세워 주시는 것이다.

 

장로의 원칙가운데 첫째는 지혜가 충만해야 한다. 둘째 그 마음이 순결하며 또한 순종하는 마음이어야 한다. 셋째 조그만 일에도 소중함을 아는 자여야 한다. 넷째 게으르지 아니하고 늘 열심을 내며 애쓰는 자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신과 또한 다른 자들을 위하여 그 생명을 언제든지 내어 놓을 수 있는 자여야 한다.

 

아버지께서는 이 다섯 가지의 원칙으로 유대인과 이방인과 종을 지켜보신다. 그리고 이 다섯 가지에 모두 다 충성한 자들을 24장로로 세우시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유대인에서 나오는 장로의 경우에 그리스도의 전과 후에서 얻으신다. 그러므로 처음에 택하신 시기부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승천까지는 9명을 정하셨다. 그리고 그 이후 거짓환난과 진짜 환난가운데서 3명의 순결한 자를 택하신다. 그리하여 유대인의 장로 12을 얻으시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그 환난의 시기에는 유대인과 이방인가운데 이러한 기준을 정해두셨다.

 

우선 마지막 때의 유대인가운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는 자들이 있다. 즉 다시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유대인이 있다. 이때 아버지께서는 그 환난기간에 있는 유대인은 이방인이 아니라 다시 유대인으로 보신다. 그리하여 그들 가운데 순결한 3명이 장로로 택하심을 얻는 것이다.

 

또한 이방인가운데서도 유대인으로 택함을 얻을 수도 있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그 이방인이 순결하면 그 순교한 자는 유대인으로 택함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보고 믿는 자보다 보지 않고 믿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씀을 전하셨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통해주신 그 말씀을 지키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던 유대인의 12제자들 가운데서는 장로가 나오지 않는다.

 

이와 같이 유대인의 장로는 그리스도의 전에는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의 부활승천 이후에는 이방인으로 기준이 있다. 그리고 환난에는 다시금 유대인의 기준으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그 기준으로 인하여 모두 12의 장로가 유대인에서 나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바울은 유대인이었으나 열두 사도와는 다른 유대인이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리스도와 함께 먹고 마셨던 사도들도 유대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께서 하신 일을 옆에서 보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다. 그러나 바울은 오직 영의 눈으로만 그리스도를 보았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말씀으로 인하여 이미 그리스도를 본 열두 사도들은 장로로서 택함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바울은 그리스도를 보지 않은 자이니 그가 장로권을 얻을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바울과 그 시대에 많은 자들이 그것을 소망하며 거룩에 애썼던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끝까지 간직하기 원했다. 그러므로 그는 유대인의 장로에 들기를 원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전의 유대인도 아니요 환난 때의 유대인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바울의 원함과 아버지의 기준은 다르니 아버지께서는 이방인의 기준으로 바울을 판단하신다.

 

그렇다고 바울이 자신이 장로가 되거나 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며 거룩에 애쓴 것은 아니었다. 오직 자신의 최선을 다하여 아버지의 그 뜻에 애썼다.

 

아버지께서는 또한 자신이 예비하신 24장로가운데 마지막은 이렇게 정해놓으셨다.

 

교회에는 이끄는 자가 있고 따르는 자가 있다. 그런데 따르는 자들 가운데 몸의 거룩을 이룬 자는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한 몸을 얻는다. 그러므로 따르는 자들을 일컬어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그들이 바로 셋째하늘에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그 몸 가운데서도 거룩한 자들은 자녀로 삼으신다. 그리고 딸에서 아들로 권세를 얻는 자들의 수를 120으로 정해놓으셨다. 그러므로 그 120중에 30은 초대교회의 환난가운데서 나온다. 그리고 나머지 90은 마지막 때의 환난에서 나온다.

 

아버지께서는 바로 그 120가운데서 가장 높은 거룩을 이룬 자에게 장로권을 허용하신다. 그러므로 120가운데서 가장 높은 영광을 성취한 자는 24번째의 장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그 예비하신 24장로를 한번 보고 한번에 결정하시는 것이 아니시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서 그들을 결정하신다.

 

아버지께서는 그 5가지의 원칙으로 이 첫째하늘에 거하는 유대인과 이방인과 종들을 지켜보신다. 또한 그 둘째하늘의 낙원에서도 동일하게 그 원칙들로 지켜보신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천 년 동안 다스리는 기간에도 역시 동일하게 그 원칙들로 지켜보신다.

 

아버지께서는 이처럼 그 모든 기간들을 다 보신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아버지와 아들의 마음에 합한 24명을 택하시는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이 다 마치면 자녀들과 교회와 종들과 온 백성들이 셋째하늘에 거하게 된다. 그때에 아버지께서는 그 모든 아들들을 다 부르신다. 그리고 그 자녀들 가운데서 장로의 거룩을 이룬 24명의 사람들을 부르신다. 그리고 그들을 자신의 옆에 앉히시며 장로라고 칭하시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이 다 마칠 때까지는 오직 아버지와 아들만 그들을 아신다. 그러나 그 외에는 누가 장로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아버지께서는 또한 그 예비하신 24장로를 이렇게 택하신다.

 

우선 아버지께서는 그를 씨앗에서부터 택하시지는 않으신다. 아버지께서 만일 씨앗에서부터 누구는 장로로 택하셨다. 그리고 누구는 택하지 않으셨다고 하면 누구나 다 그 택함을 원한다. 이것은 자녀들이 되는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24장로의 권세를 가지고 태어나는 자들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씨가 아무리 좋다 하여도 밭이 안 좋으면 그 열매는 좋지 않게 된다. 반면 밭이 금보다 더 좋은 밭이라 해도 씨가 안 좋으면 역시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좋은 씨가 좋은 밭을 만나는 것을 지켜보신다. 또한 그 후에 어린 시절까지 살펴보신다. 그리고 그 후에 그가 성인이 되었을 때에 그 마음이 끝까지 순결한가를 지켜보신다. 그리고 그 열두 살이라는 성인의 나이를 정하시고 그때에 택하시는 것이다.

 

이때 성인의 나이에 택함 받은 그는 계속해 아버지께서 예비하신 그 길로 나가게 된다. 하지만 그가 다른 길로 가지 않고 그 길로 가는 것은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아시고 택하셨기 때문이다.

 

장자는 자녀들 가운데서 가장 높은 거룩을 이룬 자들이다. 하지만 장로는 장자보도 더 높은 거룩을 이룬 자들이다. 그러므로 24장로와 장자의 사이에는 거룩의 차이가 있다. 그리고 거룩의 차이가 있으니 아버지께 가까이 거하는 것에도 차이가 있다. 한 가지 비유를 통해 24장로와 장자 사이에 있는 거룩의 차이를 알 수 있다.

 

한 주인이 여러 명의 종을 데리고 있다. 하지만 그 종들 가운데는 항상 주인의 옆에 있는 종이 있다. 또한 그 주인의 거하는 처소에서 그 마당을 지키는 종도 있다. 이때 항상 주인의 옆에 있는 종이 마당을 지키는 종보다 으뜸이다. 그리고 주인과 항상 함께 하니 마당을 지키는 종보다 더 좋다. 그렇다고 마당을 지키는 종이 낮은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마당을 지키는 종도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장로는 늘 아버지와 함께 거한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가시는 곳마다 따라다니며 항상 아버지의 옆에 서 있다.

 

물론 장자도 마당을 지키는 자와 같이 아버지의 모습도 본다. 그리고 아버지의 명령도 받지만 아버지와 항상 함께 하지는 않는다. 오직 함께 해야 할 때만 아버지와 함께 한다. 그리고 밖에 나가서 일을 할 때는 혼자 있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옆에 늘 함께 있는 장로들이 더 좋고 으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께서 예비하신 그 24장로를 십자가고난을 받으신 그리스도를 통해 깨달을 수 있다.(동영상어린양을 보라’)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자들을 위하여 손과 발에 못을 박히셨다. 그리고 허리에 창을 받으셨으며 몸에도 채찍을 맞으셨다. 또한 머리에는 24개의 가시가 박힌 가시면류관을 쓰셨다.

 

그러므로 이 첫째하늘에서 어떤 자는 그리스도의 손과 발의 위치에서 고난을 당한다. 그리고 어떤 자는 허리와 몸의 위치에서 고난을 당한다. 그리고 어떤 자는 머리의 위치에서 고난을 당하는 자도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손과 발로서 고난을 당한 자는 그리스도의 한 몸에 손과 발의 위치로 들어간다. 그리고 허리와 몸으로서 고난을 당한 자는 그리스도의 허리와 몸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머리로서 고난을 당한 자는 24장로로서 그리스도의 머리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고난 당한 그들이 그리스도의 한 몸에 거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한 몸 안에 거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성소로 들어간다. 그리고 어떤 자들은 그리스도의 피를 들고 지성소로도 들어간다. 그리고 그 거룩한 곳에 서서 아버지의 얼굴과 영광을 보며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해진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 자들은 참으로 큰 복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와 같은 영광스런 몸을 아무에게나 주시지 않으신다. 그리스도께서도 자기의 거룩한 몸으로 아무나 받지 않으신다. 오직 그곳에 거할 수 있는 거룩이 있는 영혼에게 그 거룩한 몸을 주시어 거하게 하신다.

 

그런데 셋째하늘에서 그리스도와 같은 유대인은 유대인의 딸을 위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지파에 있는 자들의 행위와 말과 생각과 마음을 지키도록 한다. 그리고 유대인의 딸은 새 예루살렘 성으로 나오는 백성들의 행위와 말과 생각과 마음을 지키도록 인도한다.

 

한편 그리스도와 같은 이방인은 이방인의 교회를 위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가 다스리는 교회의 행위와 말과 생각과 마음을 지키도록 한다. 그리고 몸인 교회는 셋째하늘에 거하는 모든 백성들의 행위와 말과 생각과 마음을 지키도록 인도한다.

 

이렇게 거룩케 하는 일을 하는 것은 24장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24장로는 매우 거룩한 곳에 들어가는 자들이다. 그리고 그 거룩한 곳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과 함께 한 처소를 쓴다.

 

또한 장로들은 아들과 딸과 그리스도의 몸과 백성들을 위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모든 자들의 행위와 말과 생각과 마음을 늘 지키도록 한다.

 

이와 같이 셋째하늘에서 그리스도와 그와 같은 형제와 교회와 장로는 큰 권세를 가지고 일하는 자들이다. 또한 아버지께로 큰 영광을 얻어 말을 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많은 자들이 그 영광스런 자리에 앉아 거룩한 일과 말을 하기 원한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로서 거룩케 하는 일을 아무에게나 주시는 것은 아니시다. 그리스도의 거룩을 이룬 아들에게 그 자리를 주신다. 또한 장로로서 거룩케 하는 일도 아무에게나 주시지 않으신다. 장로의 거룩에 이른 자에게 그 일을 주시어 그 말을 하게하신다. 그리고 이렇게 하시는 것은 자녀들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셋째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거룩케 하는 그 일과 그 말을 자녀의 거룩을 이룬 자들에게 주신다. 그러므로 그 자녀들이 제사장이 되어 거룩케 하는 일과 말을 하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와 같은 왕이 되어 온 백성들을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