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모르는 자가 무슨 말을 하거나 어떤 행위를 하면 그의 말과 행위를 듣고 따라 행하는 자들도 자기 입으로 말하고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자기가 지금 왜 그 행위를 하는지 모르고 행한다. 그러나 영이 중생한 자는 진리에 순종함으로 혼의 거룩에 이르리니 어찌 진리를 모르는 자의 마음과 생각과 육이 거룩해지리요? 오히려 그들은 예수이름을 이용해 세상으로 들어가 세상 것들을 취하며 자기생각을 진리로 따른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므로 둘 다 멸망하는 것을 원치 아니하셨으니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먼저 나가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전하라고 하시거나 그 어떤 말과 행위를 원치 않으시고 오직 진리만을 가르쳐주셨다.

 

그러다 진리를 배우던 제자들이 진리의 한 부분을 깨달았을 때 그리스도께서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방황하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를 깨달은 그 제자들을 그들에게 보내셨다. 하지만 그들을 보내시되 자신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처럼 질서가운데 계시니 82명 가운데 여자들이 포함된 120은 먼저 예루살렘을 비롯해 전하기 쉬운 마을로 보내셨으며 12은 독사새끼들이 차지하고 있던 그 성전 쪽으로 보내셨다. 그러므로 여자를 포함한 전자는 성전보다는 각 마을에서 하루나 이틀을 머물며 진리를 가르쳤으되 예루살렘으로 갔던 12은 오직 해가 올라와서 갔으매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옴은 가는 길과 돌아오는 길에 듣는 자들이 몇 있었을지라도 예루살렘의 주변에 거하던 어느 누구도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이 거부당할 것을 모르고 그 헛된 일을 시키셨던 것인가? 그렇지 아니하니 당연히 모든 것을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12을 듣든지 아니 듣든지 심히 패역한 자들에게 보내신 이유는 그들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 원하셨기 때문이다. 즉 12은 나중에 자신이 없을 때에 그 영혼들이 거부한 것을 기억하며 모든 것이 아버지의 손에 있으니 사람의 손에는 없음을 깨닫고 율법이 아닌 율법에 붙들려있는 영혼들이 오직 불쌍하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전하게 하려 하심이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계획대로 나중에 11와 맛디아는 자신이 거절을 받았던 그 날을 기억하며 죽는 그 순간까지 오직 진리만을 담대하게 전하되 자신을 죽이는 자들도 불쌍히 여겼다.

 

당시 예루살렘으로 보냄을 받은 베드로는 우선 성전 앞에서 장사하는 한 영혼에게 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전에는 율법과 계명이 진리인줄 알고 따랐소이다. 그러나 율법도 계명도 그것을 만드신 이가 진리요. 그러니 그것은 오로지 진리의 한 부분밖에 되지 않소이다.” 이에 성전에서 매매하던 자는 ‘그것을 만든 이가 누구요?’라고 물었고 베드로는 ‘그가 바로 그리스도라 하는 사람이요.’라고 대답하자 성전을 통해 육의 이익을 얻고 있던 그는 베드로의 양쪽 뺨을 때리면서 말하길 ‘우리가 율법과 계명을 수없이 지켜왔으며 모세로부터 오늘날까지 우리가 그것을 지키므로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도다.’라고 소리쳤다. 그의 말을 듣자 베드로는 그 영혼에게 다시 ‘그렇소이다. 하지만 계명과 율법이 먼저요 율법과 계명을 준 자가 먼저요?’하고 물었다. 그러자 육의 배를 채우고자 성전에서 일하던 자는 대뜸 준 사람은 모세라고 답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모세가 아니요 모세는 받은 자이니 준 자는 여호와이시며 여호와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셨소이다.’라고 말하니 성전에서 사고파는 행위는 내가 아니요 제사를 위한 것이라는 의로움을 품고 있던 그는 베드로의 말을 듣자 또다시 양쪽 뺨을 때리며 ‘네가 그리스도냐?’라 하되 성격이 불 같은 베드로는 쌍욕을 하며 가판대를 둘러엎지 않고 ‘내가 아니요 나는 그를 따르는 제자요’라고 했다. 이에 그는 땅에서 돌 하나를 집어 던지며 ‘너나 율법과 계명을 지키라. 그리고 그 자가 진리를 가르치는지 어찌 알 수 있겠느뇨? 그런데 넌 랍비에게 가르침은 받았느뇨? 네가 어디서 말씀을 배웠느뇨?’라고 소리 지르며 베드로를 향해 계속 돌을 집어 던졌으니 그는 다수의 힘으로 때렸고 베드로는 맞았다.

 

이와 같이 사람은 진리를 위해 자신이 죽으면서까지 다른 자들을 불쌍히 여기므로 자신이 진리를 따르고 있음을 증명하되 유전과 교훈을 듣고 지키는 자들은 반대로 자기와 생각이 맞지 않는 영혼들을 자기의 생각으로 비판하고 미워하고 저주하다 결국에는 피 흘려 죽이므로 자신이 진리를 대적하는 자임을 그 미움과 살인이 증거한다. 그런데 당시 12이 핍박이 가장 심한 예루살렘성전으로 가서 다른 그 어떤 말도 꺼내지 아니하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전했던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12제자들과 120인의 전도대를 진리를 위해 보내실 때 그들에게 명하신 바로 이 말씀 때문이었으니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는 말씀에는 다음과 같이 두 가지의 뜻이 담겨있다.

 

첫째 그리스도께서 70인과 달리 12에게는 이방인과 사마리아를 거치지 말라고 명하신 것은 쉬운 곳에 가서 전하지 말고 오직 앞날에 가장 큰 핍박이 있을 그 성전의 앞에 가서 전하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마음이 그 시기부터 이미 마지막 날의 준비를 하여 자신이 둘째하늘의 낙원으로 승천한 후 닥칠 그 핍박의 날에도 오직 진리만을 붙들고 담대히 나갈 수 있게 하려 하심이었다.

 

둘째 차라리 그리스도에게 가라고 하면 말이 어색해지니 사람들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유대인들로 본다. 그러나 양이 누구인지를 깨달으면 그들이 가서 오직 진리만 전한 이유를 알 수 있다. 유대인들에게 어린 양은 속죄제사의 제물로 쓰이는 짐승이니 구약예언에 따라 이스라엘의 어린 양은 오직 인자를 뜻한다. 그러므로 이제는 짐승의 피가 아니요 깨끗한 피로 구속 받을 수 있기에 제자들이 그 거룩한 피를 전했던 것이요 또한 그 어린 양에게로 나올 수 있는 그 길을 예비하려는 것이었다. 즉 살고자하는 갈급한 마음이 있을지라도 어린 양을 잃어버린 불쌍한 백성들로 하여금 온전한 거룩과 부활을 위해 이스라엘의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께로 가게 하라는 의미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할례를 받은 유대인이나 거듭난 이방인이나 그리스도를 따르며 받는 고난은 원치 아니하고 그저 부스러기만 드린다. 즉 자기의 생각을 따르고 세상의 풍속을 좆고 자기의 의와 선을 구하면서 돈과 행위를 드리는 것이 훨씬 더 쉽고 또한 자기의 육에도 유익이 되니 십자가로 나가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육신의 생각을 따르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인자의 그 거룩한 피와 살을 통해서가 아니요 오히려 자신이 스스로 의롭다 함을 인정받기 원함이되 사람은 누구나 마음 안에 죄가 거하고 있으니 스스로는 의롭거나 거룩하게 되지 못한다.

 

또한 자기의 생각을 돌이켜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자들은 할례가 있든 없든 거듭남이 있든 없든 진리를 깨닫지 못하니 교회를 다니는 불신자들은 이 말씀을 보고 그리스도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차별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도 사람들의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하는 자들은 이미 교만이 하늘에 닿았으니 자기 입으로 이방인보다는 차라리 유대인에게 전하라는 이 말씀은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말해놓고 아직은 때가 아니니 먼저 유대인에게 전하라는 뜻이요 또는 이방과 가까운 지역부터 전하라는 뜻이라며 억지로 풀어서 가르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공생애기간에 이미 이스라엘과 주변이방지역들을 다니셨으니 사람이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함은 오직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완악한 죄와 교만으로 인함이다. 그리하여 자기의 생각과 세상에서 돌이키는 영혼만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이니 거룩하신 영께서는 아버지의 그 뜻대로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회개하는 자에게만 진리의 깨달음을 주시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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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핍박이 있는 곳

 

하나님의 노래

 

정결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