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남을 확증하는 말씀의 씨앗

 

한 영혼이 거듭남의 은혜를 통해 유황불 못의 영원한 죄의 형벌에서 건져냄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길은 이것이니 어떤 자가 만일 거룩한 공동체에 예배를 드리러 나오면 그를 새신자실로 데리고가 커피를 주며 자기교회를 안내하는 책자를 주거나 등록카드를 주거나 새신자 양육을 시키거나 사람들 앞에서 환영하는 것이 아니요 그 무엇보다 가장 먼저 그에게 확인해야 할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그가 거듭날 때 어떤 말씀의 씨를 받았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사람은 그의 혼이 중생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의 마음과 영이 간절히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십자가 보혈을 믿고 자기의 죄들을 진심으로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면 거룩하신 영께서 그의 영에 함께하는 거룩한 혼을 깨워서 일으켜 세워주시고 그의 영과 함께 하신다. 그러므로 깨어난 영혼이 비로소 의(칭의)와 거룩(성화)과 영광(영화)까지 그 온전한 구원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남자가 사랑하는 아내의 밭에 씨를 뿌리니 그 중에 하나의 씨가 그 길을 헤엄쳐가서 여자의 밭에 심긴 후 하나를 이루어 점점 크게 자라기 시작한 것은 분명하게 있었던 일이지만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그 씨가 밭에 들어간 후 보호막을 치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여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람이 중생하는 것도 이렇게 오직 영(말씀과 깨끗한 마음속의 영)적으로 보이지 않는 바람이 불 듯 일어난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겉모습이나 인격 혹은 그의 종교적인 행위나 그 기간을 보고는 그가 거듭났는지 혹은 거듭나지 못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여자가 월경이 끊기고 입덧을 하고 배가 불러오면 남편의 씨가 사랑하는 자신의 밭에 심겨졌다는 것을 자신이 가장 먼저 깨닫고 또한 주변의 사람들도 알게 된다. 그러므로 나뭇잎이 흔들리면 안보여도 바람이 불고 있음을 알듯이 자신이 현재 무엇을 따라 움직이고 있는가를 보면 거의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가 만일 자신을 이끌고 있는 그 영을 따라 썩어질 육을 얻고자 이 소망 없는 헛된 세상에서 헤엄을 치고 있으면 그는 거듭남이 없는 자요 반대로 그의 마음이 거룩하신 영께로 이끌려 죄들의 책망을 받고 회개하고 돌이키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가고 있다면 그는 거듭난 자이기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진리의 영을 통해 십자가의 진리를 깨닫기 전까지는 자신이 거룩하신 영께로 이끌리는지 이 세상의 영에 의해 움직이는지를 모른다. 또한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따르기 전까지 거듭난 모든 영혼들이 육의 필요와 욕심과 자기의 생각과 헛된 영광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매여 있으며 심지어 육적인 복과 세상적인 복이 하늘의 아버지께로 내려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아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기 전까지는 거듭난 자도 이방인처럼 이 세상에서 그저 한 푼 두 푼 거두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리하여 사람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현재 무엇을 따라 사는지를 보며 거듭남이 있는지 어느 정도는 판단할 수 있으나 정확하지는 않다.

 

하지만 거듭남은 오직 영적으로 일어난다 하였으니 오로지 영 즉 말씀을 확인해보면 자신에게 거듭남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자가 자신의 태에 생명을 품고 있는 것은 남편에게 있는 그 사랑의 씨가 자신의 밭에 와서 심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가 만일 거듭났다면 자신을 거듭나게 한 그 거듭남의 말씀 즉 그 씨를 자신의 밭에 즉 자신의 마음에 기억하고 있다. 그리하여 거듭난 영혼들은 그 귀한 말씀과 또한 그 거듭난 첫사랑의 순간을 자신의 마음에 참으로 소중히 늘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그 거듭남의 말씀이 없다면 그는 거듭나지 못한 것이니 사람이 어찌 말씀 없이 거듭날 수 있겠는가? 즉 여자가 어찌 사랑하는 남편의 씨를 받지 않고도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거듭남의 말씀을 가진 자는 언제 어디서든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니 그 거듭남의 씨를 전하기전에 거듭남을 확인하고자 그에게 거듭남의 말씀을 달라고 할 때 사람들은 세 종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그가 아무리 신앙생활을 오래했다 하더라도 거듭남이 없는 자다. 그러므로 그는 그 누구에게도 거듭남의 씨를 받아본 적이 없다. 그 이유는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 그 영혼이 교회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이미 중생이 있다라고 생각하여 그 동안 그 말씀을 한번도 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그는 부끄러워도 솔직하게 거듭남이 무엇이며 어떻게 거듭날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면 그에게 그 거듭남의 씨앗을 전해주니 그가 살고자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 거듭남의 말씀을 붙들고 중생의 은혜를 얻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 거듭남의 말씀을 달라했는데 그것은 말하지 아니하고 동문서답을 하는 자들이 있으니 자신이 몇 년 동안 신앙생활을 했으며 어느 교회에서 충성봉사를 했으며 방언을 한다느니 모태신앙이라느니 성령 받은 그리스도인이요 나는 신학교수요 목사요 내 아버지가 목사와 장로요 라고 생각하거나 또한 그러한 말들을 실제로 밖으로 내는 자들도 있다. 하지만 그가 거듭남의 질문을 받고 그 씨를 말하지 못하고 이런 생각을 하거나 실제로도 내뱉는 이유는 그가 자신을 거듭나게 한 말씀의 씨를 모른다는 뜻이요 그리하여 자신은 거듭남이 없다는 증거이다.

 

이에 거듭남의 씨를 가진 자는 그가 거듭남이 없음을 깨닫고 불쌍히 여겨 거듭남의 씨와 더불어 3장16절 같은 말씀도 함께 전해준다. 아직 거듭나지 못한 영혼은 그 어떠한 종교행위를 통해서가 아니요 오로지 아들의 그 피를 믿고 죄들을 회개하는 그 일을 행하여야만 영이 중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 원수가 택한 자는 그에게 생명이 없으니 그 말씀을 듣고도 비판하며 화를 내며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도망가거나 겨우 그런 기초적인 것을 나에게 말하느냐며 낮게 본다. 그런데 말씀을 전하는 자들 가운데 이런 난처한 모습을 더 이상 보기 원치 아니하며 또한 두려워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므로 전통의 안에는 거듭남이 없는 불쌍한 영혼들이 점점 더 많아지되 그들은 중생이 없어도 오랫동안 설교를 많이 듣고 또한 성경도 많이 읽었으니 거듭나지 못한 그 이방인들을 통해 교회가 매우 더럽혀지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거듭남의 복음을 전하는 그 상황에서 동일하게 거듭남의 씨를 달라하면 어떤 자는 기뻐하며 자신을 거듭나게 한 그 말씀의 씨를 간증한다. 또한 그 당시에 자신이 거듭남을 통해 받았던 그 은혜와 감격도 기쁘게 나누며 아버지께로 함께 감사를 드린다. 거듭남의 감격을 가진 자가 자신처럼 거듭난 자를 만나니 그의 속마음이 얼마나 반갑고 기쁘겠는가? 그런데 그것은 그가 오직 썩지 아니하는 말씀의 씨로 거듭났기에 영생이 아버지께로 그 영혼에게 임했음을 확증하는 고백이다. 그리하여 이런 것들로 아버지의 택한 자와 원수가 택한 자가 사람의 눈으로도 분명히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중생 후 거룩으로부터 율법과 행위로 돌아선 자도 자신처럼 중생 후 아버지의 뜻에서 율법과 행위로 돌아선 자들을 만나면 말이 잘 통하듯 세상과 주님께 한발씩 담그고 있는 자도 자신처럼 양쪽에 발을 담그고 있는 자를 만나면 세상에서 한쪽 발을 뺄 생각을 아니하니 그들의 마음이 편안하기 때문이다.

 

한편 어떤 자들은 자신이 이미 거듭남의 은혜를 받았어도 그리하여 그 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중생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자가 간혹 있다. 그러므로 그는 어쩌다 누구에게 거듭남의 말씀을 받게 되면 또다시 무릎을 꿇고 간절히 그 거듭남의 말씀대로 행하게 된다. 이때 어떤 자들은 그의 믿음에 의한 행함과 간절함을 보고는 그에게 거듭남이 있음을 확증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가 다시 회개하는 것을 보니 그는 믿음이 없고 아직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어리석은 말을 하되 정작 자신은 거듭남과 구원도 구별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간절한 회개는 자신에게 거듭남이 없기 때문이 아니요 거듭난 후에 여전히 자신의 생각과 몸과 입술에 맺히는 죄들과 또한 자신의 마음 안에 그대로 남아있는 죄의 뿌리를 보며 자신의 거듭남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즉 거듭남과 구원을 구별하지 못하기에 그렇게 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구원의 첫걸음인 거듭남을 의(칭의)와 거룩(성화)과 영화(영광)라는 온전한 구원의 모든 단계와 동일하게 보는 이유는 깨닫지 못하고도 입을 벌리는 교만한 자들에게 사람은 거듭날 때 이미 영화까지 다 이루어졌다는 어리석은 말을 계속적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안타까운 일이되 많은 자들이 거듭난 후에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의를 따르며 죽기까지 죄와 싸우므로 마음에서 사단의 깊은 것이 제해지고 거룩에 이르므로 왕과 제사장으로서 성소에 들어가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리하여 사람을 두려워하며 유전과 규례와 교리를 따르는 자들은 거듭난 사람은 그 순간에 믿음으로 이미 온전한 구원을 받았으니 몸으로는 죄를 짓고 마음에는 비록 죄를 품고 있어도 지성소까지 들어갈 수 있다는 소멸 당할 담대함을 가지고 아버지의 거룩하심을 자신의 죄의 수준으로까지 끌어내리되 고난 없는 영광을 바라보고 있는 그들은 성전마당만 밟는 자들 가운데 악하고 게으른 자들이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